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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레닌/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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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 1870년 [[러시아 제국]] 볼가 강변 [[심비르스크]]의 장학사 일리야 니콜라예비치 울리야노프(Илья Николаевич Ульянов, 1831–1886)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울리야노바(Мария Александровна Ульянова, 1835–1916)[* 혼전성은 '블란크(Бланк)'.] 부부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레닌의 부계는, 조부는 해방된 농노 집안 출신이고 조모는 [[기독교]]로 개종한 [[몽골인|몽골계]] [[칼미크인]]이다. 조모에 관해서는 마리에타 샤기냔(Мариэтта Шагинян, 1888–1982)이라는 작가가 레닌의 초년을 담은 전기 소설에서 밝혔다. 레닌 유족(아내 [[나데즈다 크룹스카야|크룹스카야]]와 레닌의 남동생인 내과 의사이자 혁명가 드미트리)의 감수를 거친 책이며, 이 책에서 레닌의 몽골계 혈통을 드러낸 탓으로 책이 금서로 지정되고 작가 샤기냔과 크룹스카야는 견책을 받고 편집자는 파면되고 작가는 해당 장르(소설)의 활동을 정지당했다가 18년 후에 복권되었다. 레닌의 모계는 이름난 유대계 러시아인 가문이었고, 레닌의 어머니 마리야 울리야노바는 [[유대교]]에서 [[러시아 정교]]로 개종한 [[아슈케나짐|아슈케나즈 유대인]] 아버지와 스웨덴-독일계 혼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개종한 지가 굉장히 오래되어서 레닌의 대에 들어가면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정도였다.[* 최초 개종은 레닌의 외증조할아버지대였다.] 이들에게 유대계가 섞였단 사실은 레닌의 누나 안나가 30대에 스위스 여행을 하던 중 외할아버지의 성을 대자 그거 유대인 성씨라는 말을 듣고 나서였다. 하지만 레닌은 자신이 유대계라는 사실을 모를 때부터 유대인들에 대해서 재능 있는 민족이라고 높이 평가했고, 알고 난 후에는 자신의 유대계 혈통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어머니 마리야 울리야노바는 언어에 재능이 있어 4개의 국어를 구사했고, 직업은 교사였다. 아버지 일리야 울리야노프는 [[농노]] 출신이었지만 고급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이후 교육 공무원으로서 공적을 인정받아 세습귀족의 자격이 있는 4등관까지 오를 정도로 유능했다. 일반 농민이나 노동자와는 괴리된 중산층 계급 출신인 레닌은 이러한 뒷배경을 딱히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는 않았고, 종종 사적인 경험과 연관지어 소 [[부르주아]]적인 정서에 이해심을 보였다.[* 이는 레닌 사후 우상화 작업을 하던 스탈린에 의해 의도적으로 묻혔다.] 레닌과 형제자매들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차르 충성 교육 또한 하였는데, 이는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레닌과 형제 자매들은 어학·역사·문학·음악 등 다양한 방면으로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 학습 효과는 반대로 나타나게 된다. 레닌의 아버지가 죽고, 레닌의 형인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알렉산드르]]가 [[차르]] [[알렉산드르 3세]]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가 [[사형|처형]]당하자 레닌과 그 형제들은 모두 혁명에 가담한다. 이후 레닌의 어머니도 혁명에 투신한 자식들을 돌봐주게 된다. 레닌은 이런 유복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특히 어머니로부터 유창한 [[프랑스어]]를 배웠다. 러시아 귀족들이 프랑스어를 거의 모국어처럼 쓴 것은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보면 잘 나온다. 레닌과 같은 공산주의 혁명가가 정작 부르주아 출신에 가깝다는 것에 아이러니를 느낄 수도 있는데, 사실 전 세계 어디서든 좌파 운동가들 중엔 프롤레타리아 계층보다 오히려 [[부르주아]] 지식인 계층 출신이 많다. 고등 교육을 통해 좌파 사상을 습득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 점을 감안하면 이상한 것은 아니다.[* 19세기말~20세기 초의 프롤레타리아 계층은 문맹이나 겨우 면하면 다행이었을 정도였으니 당연히 고급 사상을 익히긴 힘들었다. 노동자 출신 운동가들도 존재하긴 하는데, 주로 부르주아 출신 운동가들이 혁명을 할때 무력집단의 행동대장으로 동참했다가 타고난 능력이 뛰어나 빠르게 사상을 습득한 경우에 해당했다. 애초에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무시한 혁명가들에 대한 비난이 혁명 후 국외로 탈출한 반혁명 세력들의 흔한 비난용 근거 중 하나였다.] 레닌이 17살이 되던 해, 혁명 운동에 투신하고 있던 형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알렉산드르]]가 차르 암살에 가담하여 체포된 후 [[사형]]을 당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는 [[러시아]] 사회의 모순을 본격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한다. 1887년 카잔 제국 대학에 입학했으나 그해가 가기도 전에 학생 운동으로 퇴학당하고,[* 이 때문에 [[카잔]]에는 청년 시절 레닌의 모습을 딴 동상이 있다.] 이후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효시인 게오르기 플레하노프가 번역한 서적들을 탐독하며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1893년에는 [[마르크스주의]] 조직인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가입했고, 그해 말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가 본격적으로 혁명 운동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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